의지있는 북극여우님의 이글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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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골이느냐 하면

집은 세화 바다에서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이다. 읍내의 상징 하나로마트도 있는 잘 나가는 동네이자 제주 동쪽을 감아 시내까지 들어가는 일주도로가 지척이다. 그런데도 여기가 시골이구나 싶은 문화 충격을 몇번 받았다.

한번은 kt 인터넷 설치 건으로 연락했을 때다. 설치가 안 되는 상황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는데 글쎄 전신주가 없어서 안 된다는 거다. 가장 가까운 전신주와 거리도 멀어서 전신주를 두 개 세워야 한다며 비용을 안내해 주었고, 여기 진짜 시골이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결국 제주 방송 인터넷을 연결해서 사용한다.

다음은 똥차 문제다. 이 집은 정화조가 오수관과 연결되지 않아서 해마다 똥차를 불러서 퍼야 한다. 오늘 드디어 오수관 연결 업체가 동네 전체에 오수관을 연결한다. 드디어. 그리고 지금은 2018 년.

또 뭐냐면 LPG. 아주 어릴 때나 가끔 보았던 그 LPG통을 사용한다. 서울에서는 도시가스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그것은 진정 도시의 인프라였던 것이다. 식당에는 LPG통이 두 개 물려있어서 하나가 다 되면 영업중에 뛰어나가 새통을 열어야 한다. 새통을 열면 즉시 화이트보드에 '가스'를 쓴다. 이전에 한번 새통을 열고 주문을 하지 않아서 불이 뚝 꺼졌기 때문이다. 그날의 마지막 파스타를 팬질할 때였는데, 부탄가스도 똑 떨어져서 주인아주머니 것을 빌려 휴대용 버너로 팬질을 했다.

그리고 밤. 시골에 살면 달 밝은 밤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 평소 지척도 안 보이던 길인데 보름달이 뜨면 사방이 훤히 보인다. 이 어둠에 적응이 되다보니, 광화문 밤 12시의 풍경이 너무 놀라웠다. 밤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버스도 있다니? 아 환해 아 눈부셔! 내가 이런 곳에서 살았다는 게 새삼 신기할 뿐이다.



오리 꼬치



어떤 예약 전화

손님 : 지금 메인이 뭔가요
나 : 오리 꽁피입니다
손님: 오리 꼬치요?
나 : ㅎ흡 오리 꽁피요
손님 : 오리 꽁치요?
나 : ㅎㅎ 오리 꽁 피 요
손님 : 아ㅋㅋㅋ오리 꽁피요
나 : ㅋㅋㅋㅋㅋㅋㅋ
손님 : ㅋㅋㅋㅋ 오리를 꼬치에 꽂아주신다고
나: ㅎㅎㅎㅎㅎㅎㅎ
손님 : ㅋㅋㅋㅋㅋㅋ



소공녀는 집이 없어도 소중한 것은 있다네.

'왜 집을 사는지 모르겠어. 그 큰돈을 왜 묶어둬? 전세 살면 되잖아.' 진지하게 부동산 이야기를 하던 동기들 앞에서 이렇게 얘기하던 천진한 20 대의 나는 이제 없다. 지금은? 나도 뻔한 사람이다. 어떨 땐 조급하다. 모두가 바라보는 성취를 나만 바라보지 않을 용기가 점점 사그라든다.

집은 없지만 생각과 취향은 있는 미소가 집만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여행한다. 안정을 찾은 사람의 삶은 전형적이지만, 동시에 풍자소설 만큼 과장되어있다. 좋은 직장에 헌신하면 건강을 잃고, 결혼하여 안착하면 시댁이라는 짐을 떠안고, 아파트를 사면 빚의 감옥에 갇히고, 부자 남편을 얻어 아이를 낳으면 나는 사라진다. 하지만 '전형적인' 삶을 쫓으면서 취향과 생각을 지킬 방법은 없는 걸까. 이 시대의 안정은 개인적인 삶의 풍요로움과 평행선을 달리는 것일까.

어느 정도는 그런 것 같다. 세상이 중시하는 가치와 나에게 소중한 가치. 둘 사이의 교집합이 완전히 하나의 원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선택을 반복하고, 타협해야 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집이 없고 돈이 쪼들려도 나를 채워주는 소중한 것들을 늘 기억할 것. 세상이 중시하는 가치는 개인의 삶에서 저마다 환율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설령 남이 다 가진 것을 갖지 못 한대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용기를 가질 것. 나만의 위스키와 담배를 사수할 것.

백발이 되어 한강을 건너는 미소의 모습이 내게 상기시킨 것들. ㅡ 영화 '소공녀'

너무 역대급이라





장사하며 듣는 골 때리는 어록을 수집하는데, 이건 너무 역대급이다. 식당이 서울에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시대착오적이다. 지금 무슨 시대죠. 지금으은 조선시대?

껌따이







'빨리 와봐. 대박이야' 매일 프터 마지막 손님이 나가면 건너오라는 전화를 받지만, 이날의 통화는 사뭇 달랐다. 도대체 뭐가 대박이라는 거지. 건너가보니 왠 고양이가 있었다. 손님을 따라 들어왔다는데, 목줄을 했고, 목줄은 누군가 케이블 타이로 수리한 흔적도 있었다. 이놈의 시골은 새로운 유기 동물이 매일 등장한다. 그때마다 연민에 빠져 잠깐 동물을 예뻐해주는 나 자신에 도취되기 보다는, 스스로 살게끔 두는 게 차라리 책임감있는 행동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나 이미 프터 사장은 내쫓을 타이밍을 놓쳤고 이 생명체에 반해버렸다. 이곳저곳에 주인을 찾는 글을 올리고 집에 데려가서 몇 주를 함께 생활했지만, 식빵이와 조금도 친해지지 못했다. 식빵이를 책상에 묶어놓고 방문을 닫아 격리했지만 다가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식빵이는 켁켁거리며 목줄을 당겼고, 고양이는 하악질로 화답했다. 서로 마주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간식을 하나씩 번갈아 줬는데 나를 사이에 두고 싸우는 바람에 고양이가 챙 뽑아든 손톱에 손바닥이 찍히기도 했다. 식빵이도 죽자고 달려들었다가 손톱에 찍혀 피를 보았다. 결국 보호소에 연락해서 주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보호소 방침은 TNR 중성화해서 발견된 곳에 풀어주는 것이란다. 결국 방울 두쪽과 귀 끝을 잘린 고양이는 다시 프터 마당으로 돌아왔다. 벤치 밑에 둔 사료와 물을 먹고, 화장실에 따라오고, 만나면 냥하고 인사한다. 문가에 숨어있다가 드나드는 손님을 따라 날쎄게 들어와서 빈의자에 슬쩍 앉기도 한다. 저녁영업 전에 넓은 마당에서 이녀석과 하는 숨바꼭질이 요즘의 즐거움이다. 정주기 싫어서 이름을 안 지었는데 세 달이 다 되도록 아직 약속한 이름이 없다. 발은 누구보다 하얗지만, 주로 검은애라고 부르고, 제주어로 검따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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